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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기록/Tagebuch

좋은 관계의 비밀 - 대등한 동반자 의식

"지금 결혼한 지 몇 년 차지? 아직 신혼 같네... 근데 한 번 살아 봐라~ (...그런 관계는 곧 끝나게 되어 있어...)"
"...???"

조언인지 악담인지 모를 어른들의 말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우리 부부는 꽤 '아직 신혼'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라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우리가 누구보다 평등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작은 계획부터 크고 작은 재정 관리,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까지 거의 모든 일을 함께 대화하고 결정한다. 신랑이 자신도 모르게 기저에 깔려 있는 가부장적인 의견을 낼 때면 (예를 들어 시댁 부모님의 의견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거나, 가사일의 일부를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늉이라도 보일라 치면) 가차없이 항의한다. 처음에는 나의 불만이 신랑을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대화 중에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시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지금도 서로를 설명하는 과정에 있지만, 더 건강한 관계로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에 게을리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수많은 부부 관계와 직장에서의 상하의 관계, 노사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가 이 대등한 관계를 무너뜨리며 망가지고 있다.


1. 

수 많은 우리 나라 남편들은 참 이기적이다. 아내의 말을 들으려고도, 이해하려고도, 따라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따라 주는 경우에도 그야말로 따라 '주는' 것이지, 서로 의견을 '조율'한다거나 조금씩 '합의'하는 모습이 아니다. 


'나는 설거지를 이만큼 도워주는 사람이야.' 

'아침밥 달라고 안하는 좋은 남편이야.'

'아내가 공부할 수 있게 (혹은 교회 갈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있어.' 


이런 말을 하는 남편들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남편-아내 역할 분담을 상식으로 여기고 자신이 얼마나 그 전통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한다. 남편과 아내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전통의 가족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친구로 다시 바라보고 처음부터 관계를 다시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나는 "부부의 동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의 인식" 때문이라고 본다. 남편의 진로에 따라 아내의 인생이 희생으로 결정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인식은 시댁에 들를 때마다 아내를 불편하게 한다. 며느리의 일상이 남편의 결정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시댁에서 며느리들은 입을 열기 어렵다. 


혼자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아이를 갖기 위한 욕심도, 각자의 부모를 행복하게 하려는 목적도 아니다. 당사자인 너와 내가 서로의 삶에 힘이 되고 의지하며 살 수 있는 좋은 친구로 살아가길 원해서이다. 나의 배우자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하는 관계, 꿈꾸던 일을 함께할 수 있어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평등한 동반자 관계가 필수이다.


이것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남편들이 가진 특권을 내려 놓는 일이다.


2.

직장에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만들어 둔 상하관계를 인간관계에 대입해서는 곤란하다. 회사에서 만날 때 정확한 상하 관계가 만든 권력을 부리던 사람과 퇴사 후에 편히 연락하는 친구 사이가 되기는 어렵다. 상하관계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인간적으로는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직장이 규정한 상하관계가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절대적인 정체성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업무의 내용이 다른 것이지, 인간의 중요도가 다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것은 보수적인 조직 사회에서 윗사람들 가진 특권을 스스로 내려 놓는 일이다. 


3. 

교사는 때로 학생을 무시한다. 자신이 조금 더 일찍 태어나 먼저 배운 사람(先生)으로서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권력인 양 휘두를 때가 있다. 교사도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며,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인간이다. 학생들에게 먼저 배운 것을 알려주면서도 우리가 결국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요, 동반자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켜야 할 예의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될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가진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4.

부모는 자녀의 길을 함께 걷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방향은 본인이 정하고 싶어 한다. 부모도 세상 사는 일의 정답은 모르지만, 오답은 안다고 생각한다.  '이 길은 힘들어, 세상은 녹록치 않으니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후회하지 않는 길이야, 그것 보다 이것이 더 좋아 보여, 나에게 항상 상담을 요청하면 가장 좋은 것을 알려줄거야' 이런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자녀의 인생길에 이정표를 세운다.


여기까지는 좋다. 자녀 입장에서도 크나큰 혜택이며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감사의 제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녀가 그 길로 가지 않을 때이다. 특히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가 정해둔 길을 걷도록 강요하는 일은 대등한 관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녀도 스스로와 부모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각자의 의견에 동등한 가중치를 두고 존중하지 않으면, 조금씩 마음을 닫게 되어 관계가 소원해진다.


부모의 행복한 노후가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자녀에게는 부담 혹은 부모를 실망시킬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용하여 때론 불행을 초래한다.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한 자녀의 진로 결정, 부모의 행복을 위한 손주 출산, 부모를 위한 일상의 일정 변경 등...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원하는가, 본인의 행복을 원하는가?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힘을 좀 빼야 할 것이다.


5.

갑-을 관계로 대표되는 노사관계에서 힘을 가진 쪽은 늘 갑측-사측이다. 많은 힘이 사측에 몰려 있다. 노동 착취가 일상이었던 과거에 가진자들이 마음껏 누리던 특권에 못이겨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꿨다. 서로를 미워한 후 결별했다. 힘을 가진 노조는 때로 사측을 압박한다. 언제나 권력이 한 쪽에 몰려 있을 때 가진 자가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에 관계가 무너진다. 누가 더 힘이 세든, 서로를 존중하고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때 회사도 직원도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갑이 가진 특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관계든 힘을 가진 자는 조금 내려놓고, 힘이 없는 자는 스스로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함께 대화할 수 있다.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를 맺고 오랫동안 함께 걷는 친구 사이가 될 것인가.

지금 가진 특권을 잠시지만 맘껏 누리고 결국 멀어질 것인가.


자, 이제 어떤 선택을 하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