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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기록/Tagebuch

손목 시계 분실 사건 -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일

어젯밤 유난히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헬스장에 갔다. 저녁까지 먹고 가서 시간이 9시가 다 되었다. 헬스장 문이 닫기 전에 짧게 운동을 끝내야해서 바쁘게 움직였는데, 손목시계를 라커룸의 두꺼운 점퍼 위에 살짝 올려 놓는다는 것이 어디엔가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 지나서야 손목시계를 안챙겼다는 생각이 났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 짐이 늘 많고 작은 물건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지라 내가 좋아하는 이 손목시계는 항상 신경 써서 같은 곳에 보관했었는데...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이 딱 한 번이 결국 일을 그르쳤다.


좋아하는 시계인데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많이 속상했다. 혹시나 하고 센터에 전화해 보았지만 역시나 너무 늦어 통화가 되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족욕까지해서 피곤한데도 속상함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예전에 네덜란드 중앙역에서 산 지 2주밖에 안된 아이폰을 소매치기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을 아이폰을 찾아 다니느라 그 날부터 몇 주간 이어진 여행을 넋이 나간 채 보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마냥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실제로 가슴이 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스페인으로 이동해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아름다운 거리에서도 밝게 웃은 적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분명 나는 그 물건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어떤 것도 -물건과 사람 포함- 깊이 사랑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잃은 뒤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지금 잠시 나에게 있을 뿐,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결국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진실

함께 있을 때 방심하지 말고 잘 챙겨야된다는 것과 

없어진 후에는 미련을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인생팁



이 시계도 분명 내가 참 좋아하던 물건이다. 

그동안 사랑하며 아꼈지만 이렇게 날 떠났다. 


속상해하는 나를 위해 신랑은 이렇게 위로했다.


괜찮아- 그거 감가상각까지 생각하면 지금 되팔아도 얼마 되지 않는 값일거야, 우리 몇 일 치 일당이면 금방 다시 살 수 있어~ 손목시계보다 쟈기가 더 소중해!


날 떠난 것에 대해 계속 미련을 가지고 살면 현재의 삶이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잃어버린 아이폰 때문에 스페인 여행이 빛을 잃었듯 이 손목시계 때문에 오늘의 삶을 망가뜨리지는 말자.


곁에서 위로해주는 신랑이 있음에 감사하고, 찾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혔다.


+

내가 거의 마지막에 나왔으니 다음날 아침 제일 일찍 가 보면 혹시 떨어진 곳에 그대로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 아침 5시 반, 센터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라커룸을 제일 먼저 열어보고 탈의실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시계는 없었다. 접수대 직원에게 혹시 찾으면 알려달라고 메모를 남기고 왔는데 7:17에 연락이 왔다. 누군가 떨어져 있던 것을 주워다 준 모양이었다.


찾았다...♡


마음을 비우니, 돌아오기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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