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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기록/Tagebuch

주일 아침

문득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는 이런 아침이 없었던 것 같다.

있었을 법도 한 평범한 아침인데 말이다.


주일 아침, 


서둘러 1부 예배에 갈 수도 있지만, 일찍 다녀와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몰라 어수선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조금 늦은 예배를 드리고 대신 아침을 이렇게 여유롭게 보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 불과 몇 주 되지 않은 일이다. 


따뜻하게 구운 크로와상과 사과 한 조각을 먹고, '정지영의 오늘아침'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 거린다.

간단한 아침식사는 먼저 교회에 갈 준비를 하는 신랑과 함께 하면 된다. 
소소한 이야기를 도란거리다가 신랑이 먼저 나가면, 나는 스피커가 빵빵한 우리의 'play room' 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에 몸이 별로 좋지 않다. 어디가 특별히 아프다기보다 완전히 괜찮은 컨디션인 경우가 엄청 짧다.
어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이만큼 살면서, 심하게 무리를 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냥 사는 것 자체로 쉬지 않고 일하는 몸에 그 피로가 누적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무리 내가 휴식을 취한다 해도 호흡기는 계속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있다. 방금 먹은 것이든 전 날 먹은 것이든 위나 장 안에 남아있을 영양소를 분해하고 있다.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배변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가 쉰다는 것은 머리나 손, 발이 잠시 쉬는 것 뿐이라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내 몸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 조금씩 조금씩.. 피로가 누적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을 조금만 하고 나면 금방 힘들어지곤 하는가 싶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더 들어서이든, 결혼을 해서이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렇게 생겨난 것은 참 괜찮은 일이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양한 생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구지 정리하지 않고 부유하게 놔 둔다.
그냥 이런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