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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세계여행/중국 여행

[2012 중국 속으로] 8/12 칭다오 불시착



▲ 칭다오 행 항공편이 표시된 인천공항의 전광판


쫓겨나듯 출국해야 했다.

영원히 함께일 것만 같았던 친구들도 한 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멍하니 공항을 배회했는지 모르겠다. 



▲ 인천공항 면세점 길에서 시작된 실내악 연주


'우울 곱하기 우울' 상태였다. 우연히 시작된 공항 면세점길의 연주회가 마음 깊이 위로가 되어 그 자리에 발길을 묶었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벤치에서 연주가 모두 끝날 때까지 홀로 조용한 관객으로 앉아 있었다. 눈물이 흐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 공항의 무료 인터넷 전화로 호스텔에 방이 있는지 확인했다.


당시 나는 애매한 상황으로 인해 계획했던 모든 여행이 무산되고 한국으로 강제 귀국 조치 된 후 가장 비행기 값이 저렴한 칭다오로 불시착한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서 입국한 칭다오. 숙소를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좋은 숙소,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고르고 뭐 할 여유는 없었다. 안전한 곳.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 그게 조건의 다였다. 가이드북에서 찾은 호스텔 몇 군데에 전화를 해 보고 방이 남아 있다는 마지막 호스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 공항에서 버스 타고 칭다오 시내로.


숙소는 공항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하는 곳에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힘들었던 마음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배낭 하나에 캐리어 하나. 무슨 정신으로 칭다오에 입성해냐 하면, 짐을 들고 옮기는 사명감 하나 뿐이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데, 점점 시내로 들아가는 것 같았다. 


그 버스에서 케이스케_Keisuke Matsuoka 를 처음 만났다.


전화로 예약해 둔 카이위에 호스텔을 찾아 가는 길이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는데, 나와 똑같이 헤매고 있지만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일본인이 있었다. 예전에 일본 아키타에 혼자 온천여행을 갔을 때 무지하게 응큼한 일본 남성을 만났던 기억이 있는지라 케이스케에 대한 인상도 처음에는 호감이 아니었다. 버스 뒷자리에서 '카이위에' 라는 호스텔 이름이 어설프게 들려온 다음 같은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거의 어쩔 수 없이 함께 찾아가 주는 호의가 베풀어졌을 뿐이다.



▲ 青岛凯越国际青年旅馆
_
KAIYUE INTERNATIONAL YOUTH HOSTEL (http://www.yhaqd.com/cn/)
(보증금은 100 위엔을 내고 총 3박 140 위엔(50+45+45)을 썼다.)



칭다오에서 지냈던 카이위에 호스텔의 이 방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방이 꽉 차 있었고 유일하게 남아 있던 매트리스 하나가 저 끝 창가쪽 이층침대의 윗층이었다. 게다가 3층인가에 있는 방이라서 사명감을 갖고 끌고 온 캐리어를 힘껏 들어 올려야 했다. 


힘들어서 쉬고 싶었는데, 혼자 있는 헛헛함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어 빨랫감들을 정리해 보았다. 호스텔에는 층마다 공용 화장실 및 샤워실이 있었고, 맨 꼭대기 층에는 2인실이나 가족실, 빨래를 널 수 있는 테라스와 빨래줄 같은 것도 있었다. 호스텔을 둘러보고 방에 왔더니, 내 침대 아랫층과 그 건너편 침대에 장정 두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S 와 J 를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 사람이라서 나를 이 방에 배치해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한국 대학생들이었고, 학군단 이라고 했다.




▲ 호스텔 가까운 곳의 식당가


아까 체크인을 할 때, 케이스케가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었다. 만사가 귀찮아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어쨌든 저녁은 먹어야 했기에 함께 길을 나섰다. 





▲ 케이스케와 함께 한 칭다오에서의 첫 저녁 식사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식당 한 곳을 골라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대충 내가 먹고 싶은 것들로 주문을 하고 공기밥도 시켰다. 


식사 시간-

별 생각 없이 답변 위주로 이야기하는 나와는 달리, 케이스케는 열정에 넘쳤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부터 날아왔나 싶을 정도였다. 기독교가 2%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일본에서 선교를 하기 위해 중국 상해에 있는 목사님을 뵈려고 중국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식사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었다. 우리의 만남이, 그리고 나의 여정이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일이라는 것, 그 계획 속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매우 사랑하시며,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쭈욱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다. 여름 내내 경험하고도 지쳤다는 이유로 의심하고 질문하던 나의 질문들. 그 답변을 이렇게나 선명하게 듣게 되다니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 식사하는 내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던 케이스케.


▲ 천주교 성당. 건너편 계단에 앉아 바라보며 찍은 사진


사진상으로 천주교 성당이 음산하게 나왔다. 혼자라면 무서웠을, 아니 어쩌면 가지도 않았을 천주교 성당에 케이스케가 함께 가 주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성당 맞은편 계단에 철퍼덕 앉아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나를 위해 다시 기도해 주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내가 심신이 지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이다.)


그 날 모든 사람을 떠나 온 나에게 이렇게 위로가 찾아왔다.



▥ 그 날의 일기 


(07:00)

- 인천공항 도착

- 팀하고 헤어짐 ㅠㅠ

- 공항 4층 휴게실(?)에서 기내식 나온걸로 아침식사


@ 일주일.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


(07:30) 

아이폰 충전 맡김.

모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12-12:30)

공항 | 클래식 하모니, 라오스 회상

강력하게 행복한 기억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이별하는 것 만큼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2:40) 청도 도착

쿨쿨 자며 한시간 반을 날아왔다


(2:54) 이미그레이션 통과.

중국. 그나마 익숙한 풍경과 언어라 겁나고 그렇지는 않다. 감사... 이제 잘 곳 찾아야지...


(3:15)

우앙~~~^^! 무료 공중전화 덕에 한번에 예약 완료!! 히힛

오늘은 주일이라 50위엔이고 낼부턴 평일이라 35위엔인가보다.

7인실.. 어떤 사람들이 있으려나..?!


(5:00) 호스텔 체크인 완료!

일본인 한 명과 택시를 나눠 탔고

방에 들어와 보니 한국인 두 명이 있다.

S와 J. 숭실대생이란다. 경영학, 기계공학?

안심 안심

감사 감사

케이스케 Keisuke Matsuoka

어느 성당 앞에서 기도를 해 주셨다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깊이 느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