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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세계여행/중국 여행

[2012 중국 속으로] 8/13 서른즈음에

그 날 나는 서른살이었다. 

라오스에서의 여름은 그 어느 이십대의 여름보다도 뜨거웠고, 그 후열은 칭다오에서도 식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는 내 인생이 삼십대에 접어들었음을 처음으로 '기억나게' 했던 날이 바로 그 날이다.


고집스럽게 중국으로 오기는 했지만 당시 나는 내가 오려던 곳이 칭다오인지도 몰랐고, 내가 앞으로 가려는 곳이 서쪽인지 남쪽인지도 모르는 그런 상태였다. 도착한 날은 거의 누워 쉬다가 케이스케와 겨우 저녁 정도 먹고 다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역시 어디 나가고 싶은 마음도, 기운도 없는 채로 이 곳이 칭다오인지 아닌지 실감도 나지 않는 채로 그렇게 호스텔에만 종일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게으르게) 보내도 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커녕 누가 뭐래도 오늘은 아무것도 안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은 참이다.



감사하게도 호스텔 로비층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예쁘고 맛있는 프랜치 토스트와 커피가 나오니 이것 또한 횡재.




내 집 거실인 양 시간을 보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여행책은 그저 혹시 심심할까봐 가지고 있던 것이지, '무엇이라도 해야지' 라는 의무감으로 가져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천천히 움직여 빵과 커피를 먹었다.





밖에서 놀다 들어온 룸메이트 아이들이 같은 마루에 앉아 나와 같이 놀기 시작했다.

내가 재미있어 보였을 리는 없으나, 심심해 보였을 리는 있겠다.

내가 끄적거리는 아이패드 키보드와 여행책에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마루에 굴러다니는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한다.

내 나이를 물어보기에 잠시 생각-

"서른 살."


한 번도 어떠한 의미를 두어 보지 않았던 내 나이.

지금 돌아보니, 90년생 아이들에게 혼자 중국을 여행하는 서른살 누나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갑자기 <서른즈음에>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코드가 확실치 않다며 인터넷을 뒤져보고는 심지어 나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노래가 내 노래가 되는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 내 나이를 물어보고 S 가 연주하기 시작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그렇다. 서른이 된 이 해에 나는 중국에 있었다.

아니지, 중국으로 간 그 여름 나는 비로소 서른이 되었다.

처음으로 계획도 기대도 없이 긴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 翠峰苑火锅(CFY) 


기타줄을 띵땅거리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함께 버스를 타고 미식가거리에 가서 훠궈를 먹기로 했다.



▲ 미식가거리 CFY 훠궈


맛있다~

이 날만 해도 여행길에 항상 이렇게 좋은 길동무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줄은 사실 몰랐던 것 같다. 



▨ 그 날의 일기 


2012-08-13(월)


12시 쯤 일어나서 씻고 유스호스텔 지하에 내려왔다.

어제까지 안되던 아이패드 키보드도 잘 되고, 주문한 프렌치 토스트와 커피도 맛있다.

한국으로 간 라오스 팀원들이 보고싶은 것 빼고는 멋진 하루의 시작이다.

아니, 그리움이 있어서 더욱 멋진.

(그래도 카톡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맘이 편해졌다.)


오늘은 천천히.. 라오스를 정리하고, 중국 여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하루에 이렇게나 많은 일이 생겨나고, 많은 생각들이 흘러가는데 그것을 일기로 적어두지 않으면 다 사라져버리는 것이 너무 아쉽다. 밀린 일기들.. 꼼꼼히 써 둬야지.


#. 17:00

같은 방 쓰는 두 아이들과 함께 있다. 

급하지 않고 즐거운 아이들. 어젯밤에 나 코 곤 걸로 놀리긴 했지만, 기타도 치고 이야기도 나누

고.. 즐겁다. : 신**(90), 장*(88)

내일 엠티 가는 팀원들이 부럽다..잉.


#. 18:30

저녁 먹으러 출발! 228번 버스 (1위엔) 타고 까르푸 있는 香港中路 에 갔다. 

아이들과 CFY 에서 훠궈를 함께 먹었다.

팀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칭따오로 밀려나듯 날아와야 했던 어제는 외롭고 두려운 마음에 중국에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보호해 주심과 좋은 인연들을 붙여주시는 것에 나는 다시 위로 받고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한 삶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이곳에서 또 나만의 일정을 살아가야 하겠지.


<서른즈음에>

C/Am/Dm/F/G

Am/G/F/Dm/G7/C

F/G/Em/Am/Dm/G7/C

F/Dm/Em/Am/D/G

C/Am/Dm/F/G

C/Am/Dm/F/G

C/Am/Dm/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