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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세계여행/2017 대만홀릭

[회갑기념 대만여행] 서프라이즈 생신 파티 (60th Birthday!)

아주 어렸을 때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 부모님 몰래 케이크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쌈짓돈을 모아 케이크를 샀던걸 보면 부모님 중 한 분의 생신 아니면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오시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시간부터 케이크를 밥상에 올려 두고 초까지 꽂아 두었다.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은 달콤한 케이크가 많이 먹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퇴근한 엄마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에는 케이크가 동굴처럼 뻥 뚫려 있었으니 말이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나와 3살 아래 남동생은 아주 조금씩 케이크를 파먹었고, "어쨌든 기뻐하실 거야, 서프라이즈잖아!" 라는 확신으로 해맑게 웃으며 엄마를 맞이했었다.


이제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딸과 사위가, 엄마의 60세 생신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숫자만 보면 세상 살 만큼 산 듯하다. 살 만큼 산 이 날이 엄마에게 놀랍고 기쁜 날이 되었으면 하여, 대만에 엄마보다 하루 일찍 가면서 생일 가랜드와 풍선, 꼬깔모자 같은 것들을 챙겨 왔다.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준비하리라!


▲ 커넥팅 룸이 있는 14층


첫 날 밤을 amba taipei ximending 에서 보내고 오후에 숙소를 옮겼다. 어느 가이드북에서인가 대만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리뷰가 있었던 Regent Taipei 이다. 커넥팅 룸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우리 부부와 엄마&동생 방이 연결 되도록 했다.


신혼여행 이후로 이렇게 좋은 방은 처음이었다. 밝은 오후에 체크인을 하고 신난 마음에 볼륨을 높인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통유리 바깥으로 시티뷰가 펼쳐진 방에 생일 축하 가랜드를 달고, 흰 색, 민트색, 청록색 풍선을 불었다. 별 거 아닌 이벤트지만 내 마음은 들떴다. 이런 배낭 여행은 처음일 엄마 인생에 낯선 나라의 화려한 호텔방이 어떻게 느껴질 지 몰라도, 자식들이 꾸며둔 이 방에서 분명 행복하다고 할 것 같았다.





엄마는 여권이 만료되서 급하게 다시 발급 받느라 여행을 하루 줄여야 했다. 비행기까지 타는데 2박 3일은 너무 짧다고 아쉬워했다. 가족들이 시간을 다 맞추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그 귀한 날짜 중 하루를 놓쳐야 하니 얼마나 서운했을꼬.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가 하루 먼저 도착해서 여유롭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었고(예를 들면 택시 투어 기사 섭외 같은 것), 여유롭게 호텔방도 셋팅해 놓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즐거음으로 가득한 여행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희한하게 항상 모든 게 잘 되더라. 왜 그런지는 몰라도 넌 참 운이 좋은 것 같아."


무언가 일이 꼬이기 시작해서 마음이 불안해 질 때면,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아이니까, 이번에도 별 일 없이, 아니, 훨씬 좋게 잘 될거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권 사건 때문에 이번 여행이 엄마에게 아쉬움을 남길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덕에 더 좋은 여행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엄마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대만 여행이 엄마를 위해 완벽히 준비된 것 같아요. 엄마가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가..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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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처음 들어온 엄마의 표정은 '얼떨떨함' 으로 읽혔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케이크와 우리가 틀어준 생일 축하 음악, 머리에 눌러 쓴 꼬깔모자가 엄마의 표정을 '신남' 으로 바꿔주었다. 


"생신 축하 합니다~ 생신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 장모님의~ 생신 축하 합니다~♬"


엄마가 태어나서 기쁜 날, 

엄마가 살아온 60년 인생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