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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별, 세계여행/2017 "Đà Nẵng"간다낭

휴가가 끝난 후에 하는 다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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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끝났다. 

한 주 만에 한국은 여름을 완전히 걷어 내고 가을을 깔아 두었다. 


오늘- 일상으로 돌아오는 첫 날 아침. 면세점에서 새로 산 Bianco blender로 건강음료는 만들어 마셨지만(정말 맛있다!), 수영은 포기하고 말았다. 새벽이 너무 어두워서. 


어제는 기분이 좋은 나머지 늦잠을 자다가 여행 짐을 풀며 집 대청소를 했고, 이케아와 롯데마트에 가서 밤 12시가 되도록 장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대사는, "한국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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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 날 전체 여행을 기대하는 마음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숙소에서 20-30분 정도만 걸어가면 한시장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삼아 출발을 했다. 여행 내내 쓰고 다닐 밀짚모자를 하나씩 사기로 했다. 공항에서 최소한의 환전을 했으니 앞으로 쓸 돈을 한시장 근처 금은방에서 더 바꿀 예정이었다.


Kiu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소개해 준 Pho 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 가서 얼큰한 쌀국수를 하나씩 먹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려는데, 태양이 뜨거워서 도무지 더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었는데, 마침 대형 마트 하나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음료수를 하나씩 고르고, 앞으로 무엇 무엇을 사 볼까? 하는 이야기로 들떠 대화했다. 


  



다시 나와 한강 다리(Han river bridge)를 건너는데 개미떼 같은 오토바이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쉬지 않고 빵빵거렸다. 그 다리를 걸어 건너는 사람은 한 명도 더 마주칠 수 없는 '다낭의 낮 2시' 였다.


어쩌면 우리의 여행은 이 날부터 '다낭 낮 2시의 저주'에 걸려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고 휴식을 취하는 낮 2시마다 우리는 휴식이 아닌 거리 배회를 하고 있었고, 지칠대로 지쳐서 예민해진 나는 결국 다낭의 마지막 밤에 신경질이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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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엔 다낭 한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현지 교회의 높은 건물 맨 꼭대기 층을 임대해서 쓰는 교회였다. 목사님은 장로교 소속이지만 교단 통합 교회라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다가 기도 시간에 선풍기 앞 자리로 옮겼다. 그래도 땀은 멈추지 않았다. 예배 후에 짜장밥을 주셔서 같이 먹었는데, 목사님이 못 견디겠어서 내년에는 에어컨을 들여 놓을 예정이라며 내년에 또 오라고 하셨다.


예배 후 교회에서 만난 한 분이 소개해 준 Bic C 마켓에 가서 선풍기 매장의 강풍을 쐬다가 칠리 소스 하나 사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낮 2시가 되었다.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대낮에 거리를 걷고 있으면 묻지 않아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지인들은 그 시간에 다들 쉬고, 가게들도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거리로 나오자 도시를 녹여버릴 듯 한 태양이 다시 쏟아졌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에 또 우리 둘만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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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장보다 더 큰 로컬 시장을 통과하면서 두리안을 하나 샀다. 1,500원 정도에 머리통만한 것으로 하나를 열어 주었는데, 신랑은 지금까지 먹어본 두리안 중에 최고의 맛이라고 극찬을 했다. 시장에서 나와 꽤 괜찮은 카페(Trung Nguyên Legend Café)를 찾아 가서 좀 쉬었다. 아보카도 쥬스가 정말 맛있었다. 커피도 Creative 5 에 condensed milk 가 들어간 것을 시켰는데, 맛있었다. 여기서 처음 맛 본 후 다른 곳에서도 계속 이 커피를 시켜 봤지만, 이 곳 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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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을 같은 곳에서 먹을까 하다가, 동네를 조금 걸어 보았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움직인 것만으로도 오후 2시와는 다른 활기찬 베트남의 아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게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여주인은 나에게 당당하게 국수 그릇과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 다음, 빵을 들고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였다. 국수 두 그릇과 빵 하나를 먹으라는 뜻이었다. 나도 오픈주방 쇼케이스에 널려 있는 재료들로 성큼 다가가서 고수를 가리키며 팔 두개로 X 표시를 크게 해 주었다. 고수는 빼 달라는 뜻이다.


그릇을 받고 보니, 늘 먹던 쌀국수의 면이 아닌 손가락 하나 길이만큼씩 뚝뚝 끊어진 면으로 된 국수였다. 여행 준비를 하며 많이 본 그 음식이었다. 신나서 맛있게 먹는 중에 반미도 나왔다. 배에 음식이 조금 들어가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끊임 없이 오토바이들이 와서 멈추고, 봉투에 음식을 담아 갔다. 빵이건 국수건 음료수건 다 봉지에 담아 주면 한 손에 들고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가게 손님인 줄 알았던 바깥쪽 테이블 하나는 알고 보니 음료수를 따로 팔고 있는 아가씨들의 자리였다. 나도 가서 두 잔을 시켰더니 상큼하고 달콤한 쥬스를 담아서 우리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신나게 먹고 총 60,000 VND (약 3천원)을 냈다. 



숙소로 다시 돌아 오는 길에 작은 슈퍼도 발견하고 카페도 발견했다. 집 바로 앞 (한 10 발자국 거리)에 카페가 있었는데 그것도 모를 정도로 마음도 시야도 좁아져 있었나보다. 


공원 그늘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아주 진한 커피 두 잔을 시켜 마시면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보냈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운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었다. 바람이 부는 쪽을 돌아 보니 친절한 주인 언니가 틀어준 선풍기 바람이었다. 


다시 오후 2시가 되기 전까지 꿀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책의 저자와 토론을 하기도 하면서 진한 커피 한 모금. 마음이 풀렸다. 다낭은 바다가 아니면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인가 보다. 괜히 시내 돌아나니며 베트남 상인들과 친분을 쌓으려다가는 곧 머리에 쥐가 나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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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리조트가 아닌 에어비엔비 숙소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서핑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서 미케비치에 가고, 너울거리는 파도를 질리도록 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만난 미케비치는 파도가 너무 낮고 어두웠으며 해수욕장 입장에도 묻지마 입장료를 걷는 통에 기분이 안좋아지곤 하는 곳이었다. Temple Resort 쪽 입구에서 그랬다. 다른 곳은 입장료가 없긴 한데, 여전히 파도가 낮았다. 

우리가 시간을 잘못 맞췄거나 렌탈 업체를 잘못 고른 탓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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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밤에 찾아간 미케비치는 아름다웠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이 특히 인상깊었다. 바다가 에머랄드빛은 아니었지만 물결이 부드러워 예쁘게 보였다. 

이 곳은 도시나 바다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이렇게 상처받은 적이 없다. 때문에 감히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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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의 전체적인 인상은 '거대한 시장' 이다. 1년 전에 다녀갔다는 친구만 해도 모든 것이 너무 좋아서 그 곳에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는데, 나는 그 곳에 살으라 하면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다. 날씨도 너무 뜨겁다.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습도가 90-95%로 끈적하게 덥다. 매연이 심하다. 우후죽순 높이 올라 가는 호텔과 리조트, 외국인을 만나면 2-3배씩 높은 가격을 부르는 택시 기사들과 시장의 장사꾼들. 바나힐 레일바이크에 올라타는 사람에게 신경질적으로 타는 법을 가르쳐주던 짜증스러운 직원과 음식을 시킬 때마다 영수증을 업데이트 해서 들고 와 돈을 내라고 안달이던 직원. 소통은 되지 않고 중요한 정보조차 신뢰할 수 없는 답답한 사회. 베트남 사람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최소 내가 사흘간 만난 베트남은 대부분 그랬다. 가격이 싸서 좋다고들 하는데, 딱 그 만큼의 가치를 하는 물건을 받곤 했다.


사람들이 아주 순수하여 마음이 따뜻해 지거나, 아주 상업적이라 서비스의 수준이 높거나 하면 이해를 할텐데, 둘 중에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들은 과도기를 겪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더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에 내가 만난 베트남은 이해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불쾌한 곳이었다.